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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4

   "은혜를 입은 자여 찬송할지어다어머니는 간절히 부탁하며 하늘로 오르는 아기 천사의 음성을 들으시고 저를 임신하셨습니다. 저는 강원도 도계라는 작은 광산촌에서 3 1남중 둘째로 태어나 무교셨던 아버지와 비둘기 성령체험, 다양한 꿈과 환상등 수많은 영적 경험들을 자녀들에게 눈물로 간증하시는 어머님 사이에서 모태 신앙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학생시절, 교회에서 임원으로 지체들을 섬기며 사랑의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고, 3 진학을 놓고 기도하는 가운데 콜링을 받으며 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신학교 시절을 기억하면, 밖에 바라볼 없는 외눈박이로 지내야 했던 시간들로 기억됩니다. 입학 시절, 갑작스럽게 생긴 가정의 경제적인 어려움, 어머니와 여동생의 입원, 그로인해 생긴 가정의 많은 아픔들, 더군다나 믿음이 없으셨던 아버지에게서 받는 핍박은 어떻게 없는 난관들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치열한 영적 싸움가운데 사역과 공부를 병행하며 신학교 4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하나님은 40일간의 금식기도를 시키셨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가정의 문제들은 골리앗이 쓰러지듯 하나둘씩 해결되어 갔고,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하시면서 가정은 믿음의 가정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름부음 받을 목사로서 쓰실 하나님의 계획하심가운데, 대학원을 했고, 수련목회자로 3년을 훈련받은 2008 28세의 나이로 KMC 남부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모태에서부터 구별하셔서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여자 목사로서의 길을 걷게 하시기 위해 콜링하신 끊임없이 연단하셨던 같습니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교회에서 실습전도사로 시작한 사역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12년이 되어갑니다. 대학시절은 교육 파트로, 대학원시절은 전임사역으로, 수련목회자와 원목 시절은 부목사의 역할로 담임 목사님의 목회를 보좌하며 맡겨진 포지션에 따라 다양한 사역을 경험했습니다. 목회자로 쓰임받는 것에 너무 감사하며 죠지 휫필드처럼 "내가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달아 없어지길 원한다" 초심으로 달려왔었던 시간들이었던 같습니다.
 
2009 9월부터 명확한 목적과 목표는 보이지 않았지만 외국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의 강한 이끄심을 느끼고 기도하던 , 12 30 시카고 생명의 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언어 미국생활에 대한 사전 준비없이 시작한 시카고 생활과 사역은 쉽지 않았습니다. 시카고에 있는 많은 교회들이 깨어지는 상황속에서 디아스포라들만의 삶과 신앙의 세계속으로 들어가면서 국적과 신분, 안정과 불안, 희망과 상처, 꿈과 현실, 참된 교회등 많은 것들을 생각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1 1, 유학에 대한 꿈을 품고 생명의 교회를 사임했습니다. 3개월동안 미국의 주요 교회들을 다니며 탐방했고, 4월부터 Northnorthfield UMC 출석하고 있던중 김응선 목사님을 만나 중앙연합감리교회에 협동목사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온지 1 7개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미국 생활, 중앙연합감리교회와 함께 하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너무나 부족한 여종이지만 중앙연합감리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교회로 더욱 세워지길 기도하며 기쁨으로 섬기길 소망합니다. 샬롬.

                                  (김남영 목사 08/1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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