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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5

저는 미국에 오기 전 안산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있었던 본오동이라는 동네는 안산에서도 변두리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길에만 나가면 고철, 폐휴지 모으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항상 만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안쓰러울 정도로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나이 드시고 허리가 휘신 분들도 꽤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이 많아서인지, 제 마음이 자꾸 신경 쓰여서인지 길에만 나가면 그 분들에게 시선이 자꾸 갔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에는 옷을 차려입고 양손에 설교 원고와 주보를 들고 교회를 향해 가는데, 반대편 길 한쪽에서 폐품더미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나가면서 보니 키 작은 할머니가 불편한 걸음으로 천천히 천천히 자신의 키보다 높이 쌓인 페품더미를 밀고 오시는 거였습니다느린 그림 지나가듯이 내 곁을 지나가시는 그 분의 모습과, 잘 차려입은 옷, 의자에 앉아 생각과 손놀림으로 써내려간 설교 원고를 들고 있는 제 모습이 대비가 되었습니다. 웬지 모를 미안함, 부끄러움, 현실에서 멀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언젠가는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오는데 집 앞에서 한 할머니가 자그마한 식탁의 사방 테두리에 처져있는 철을 떼어내기 위해 씨름하고 계셨습니다. 식탁을 땅바닥에 쿵쿵 내리치자 한쪽 철이 벗겨지면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쪽들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서 계속 힘에 부치게 그 식탁을 바닥에 내리치셨습니다. 2층 계단에 올라가면서도 보았고, 3층 계단에 올라가면서도 내려다보았는데, 여전히 철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고,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계셨습니다. 식탁 테두리의 철이 얼마나 된다고 그걸 가져가기 위해 저 애를 쓰시는지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그런데 바닥에 쿵쿵 내리치는 그 식탁 소리가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 쿵쿵 거리는 소리가 마치 깨어있으라고 나를 내리치는 죽비(竹篦)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분들은 적어도 저에게 삶의 엄정함을 가르쳐 주는 죽비와 같은 분들이었습니다. 단지 불쌍한 마음으로 바라볼 분들이 아니라 내 마음 속 죽비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디서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음성 여전히 놓치지 않고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치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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